느리고 단순하며 게으른 삶
우리말에서 ‘게으르다’라는 말은 대개 부정적으로 쓰입니다. 관용어나 속담, 용례를 찾아봐도 부정적인 맥락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쓰임새가 조금 다릅니다. 비슷한 의미를 가진 단어 ‘lazy’는 ‘lazy Sunday’, ‘lazy lunch’처럼 가치 판단이 없는 중립적 표현이 많습니다. 이처럼 게으름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거나, 몸과 에너지를 쓰는 게 싫어서 회피하는 것이 아닌 그저 ‘활동적이지 않은 상태’일 수 있습니다.
바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느리고 게으르며 단순한 삶은 존중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사회적 지위와 물질적 풍요에 두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종종 행복이 내가 소유한 물질이 아닌 삶 자체에 있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망각하곤 합니다.
<브리드> 19호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게으름을 부리면서, 느릿느릿 즐기는 단순한 삶이 바쁜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콘크리트 벽에서도 자연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가을비가 내리면 자연의 냄새가 도드라지는데요. 그 냄새의 정체를 ‘자연의 향기(34쪽)’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도시 생활에서는 흙을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흙이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알고 나면 시간이 날 때마다 흙을 찾아다닐지도 모릅니다. ‘흙으로 돌아가다(46쪽)’에서 흙과의 접촉을 늘려야 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물 위에서의 생활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동남아시아의 수상 가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행과 물을 너무 사랑해서 보트를 구입해 물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물 위에서(98쪽)’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라 빠쎄지아타(산책)’는 목적지도, 특별한 기대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밖으로 나와 산책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달콤함’이라는 의미의 ‘돌체 파 니엔테’와 ‘달콤한 인생’이라는 의미의 ‘라 돌체 비타’라는 말과 함께 소박한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우선순위를 두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각을 잘 보여줍니다. ‘산책을 위한 외출(142쪽)’에서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산책 방법을 읽고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전체에 그 문화가 스며들게 해 보면 어떨까요.
느리고 단순하며 게으른 생활에서 맛보는 달콤함, 가끔은 자신에게 그런 여유를 선물해 보세요.